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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대한 고찰

10월26일 안중근 의사를 되새기며, 윤석열은 반성하자

by 잘될거야 곰프로 2024.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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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조선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드러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제국의 초대 총리이자 대한제국에 파견된 초대 통감으로,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일본의 실질적 지배 아래 두려는 인물이었다.

이토는 을사늑약 체결 후에도 조선을 일본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고종의 퇴위를 압박했으며, 그의 저항을 차단하기 위해 왕위를 아들 순종에게 강제로 넘겨주게 했다. 나아가 1907년에는 조선의 군대마저 강제로 해산시키며, 대한제국의 자주적 힘을 완전히 무력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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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토의 식민정책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말살하려는 조치였고, 이는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깊은 분노를 샀다. 안 의사는 1909년 초 연해주로 이동해 독립을 결의한 청년들과 함께 단지회를 조직했다. 왼손 약지를 자르고 피로 ‘대한독립’이라 쓰며 결의를 다진 안중근은, 조국의 자주권을 빼앗은 원흉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처단을 계획하게 된다.

 

10월 26일, 일본인으로 위장한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군중 속에 숨어 있다가, 이토가 열차에서 내리자 세 발의 총을 발사해 그를 처단했다. 이 사건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억압하고 민족 자주성을 말살하려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강력한 항거였다.

https://www.youtube.com/shorts/3-SsSARScuU

체포된 안중근은 뤼순 감옥으로 이송되었으며, 일본 검찰로부터 왜 이토를 죽였는지 묻자 “이토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빼앗은 원흉이자 동양 평화를 위협한 자”라고 당당히 답했다. 그는 자신이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의군 참모중장’으로서 행동했음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그는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가 순국하며 남긴 유언에는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고, 이는 조국 독립을 위한 그의 강한 신념을 잘 보여준다.

 

10월 26일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결단과 희생을 기억해야 할 날이다. 이 날은 단순한 사건을 넘어, 조국의 자주 독립을 수호하려는 민족적 저항과 자긍심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에 맞서 저항하며 독립을 외쳤던 안중근의 결의와 헌신은, 오늘날에도 우리 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의지를 되새기게 한다.

 

하얼빈에서 울려 퍼진 안중근의 총성은 대한제국이 결코 무기력하게 일본에 순응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였다. 지금도 그가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는 역사의 교훈이자, 자주성과 독립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는 목소리로 다가온다. 10월 26일을 잊지 말자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닌, 지금도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자주적 정신을 계승하고 미래를 향해 발전해 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매번 자유를 외치면서 일본에 대해 어떤 행동을 했던가? 

더욱이 지금 본인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자유를 외치고 조국 수호를 외치는 사람이 국가를 돌보지 않고 오로지 부인의 의혹을 감싸기에 바빠서 국정 운영은

내팽겨쳐놓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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