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전쟁에 협력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가 있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두 단체로
친일시인 김동환(金東煥)이 주동하여 만든 임전대책협의회와
윤치호(尹致昊)가 중심이 된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 준비위원회가 있었다.
이 두 단체는 비슷한 취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국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권고와 주선으로 통합을 논의하였고
1941년 9월 11일에 경성호텔에서
흥아보국단의 윤치호와 임전대책협의회의 최린 등 중심 인물들이 모여서 연합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두 단체의 이름을 결합하여 '조선임전보국단'으로 정하고,
10월 22일에 서울 부민관에서 새로운 단체의 발대식을 거쳤다.
이 단체의 주요 목표는 황민화사상 통일과 전시하의 국가 협력 등이었다.
초대 구성원은 최린(단장), 고원훈, 박중양, 윤치호, 이진호, 한상룡, 그리고 이성환 등이었다.
이 단체는 각계의 중요한 친일 세력을 모아 전국적인 지부조직을 구축했다.
1941년 12월에는 부민관에서
미영타도대강연회 (장소는 부민관, 연사는 김동환·옥섬진·이광수·이돈화·이성환·주요한)와
결전부인대회 (장소는 부민관, 연사는 김활란·모윤숙·박순천·박인덕·임숙재·임효정·최정희·채하백)를
개최하여
황민 의식을 고취시키고, 전국적으로 군수 자재 헌납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1942년부터는 근로 보국운동을 주최하여 부녀층을 동원하여 군복수리작업을 진행했다.
조선임전보국단은 1942년 11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조직 개편 시, 국민총력조선연맹에 합병되었다.
추가로 최린은 민족개량주의를 주장하며 일본의 승인을 통한 자치론을 주장하였다. 일본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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